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흥선대원군(興宣大院君, 1820~1898)은 조선 후기의 정치가로, 고종의 아버지이자 실질적인 섭정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다. 그는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조선을 변화시키려 했으며, 주요 업적은 다음과 같다.
1. 정치 개혁
- 세도 정치 타파: 안동 김씨를 비롯한 외척 가문들이 권력을 독점하던 세도 정치를 종식시키고, 국왕 중심의 정치 체제를 복원하려 했다.
- 비변사 축소: 국정 운영을 장악했던 비변사의 권한을 축소하고 의정부와 육조의 기능을 회복시켰다.
2. 경제 개혁
- 삼정(三政) 개혁: 백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전정(토지세), 군정(군포), 환곡(곡식 대여 제도) 등에서 발생한 부정부패를 개혁하려 했다.
- 경복궁 중건(1865~1872): 임진왜란 이후 방치되었던 경복궁을 재건하였다. 이 과정에서 원납전(백성들에게 강제적으로 거둔 기부금)과 당백전(화폐 가치보다 높게 발행된 돈) 발행으로 재정을 마련했으나,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부작용도 있었다.
3. 외교 정책 (쇄국 정책)
- 병인양요(1866): 프랑스 선교사와 천주교 신자들을 대대적으로 탄압(병인박해)한 것이 원인이 되어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했으나, 이를 물리쳤다.
- 신미양요(1871): 미국이 제너럴셔먼호 사건(1866년) 등을 빌미로 군사 공격을 감행했으나, 조선군이 강화도에서 저항하여 일부 승리를 거두었다.
- 척화비 건립(1871): "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면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고, 화친하면 나라가 망한다"는 문구를 새긴 척화비를 전국에 세워 서양과의 교류를 단절하는 정책을 강화했다.
4. 군사 개혁
- 5군영 정비: 기존의 5군영 체제를 개편하여 국방력을 강화했다.
- 포수(총을 다루는 병사), 사수(활을 다루는 병사), 살수(창과 칼을 다루는 병사)로 이루어진 삼수병 체제 강화: 훈련도감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증강시켰다.
5. 몰락과 말년
- 1873년, 고종이 친정을 선포하면서 실권을 상실하였다.
- 이후 명성황후(민씨) 세력과 대립하였으며,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청나라에 의해 중국으로 압송되었다가 1885년에 귀국하였다.
- 말년에는 조용히 지냈으며, 1898년 사망하였다.
흥선대원군의 개혁은 조선 사회를 안정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지만, 지나치게 강경한 정책과 폐쇄적인 외교로 인해 한계를 보였다.
(용어정리)*(비변사(備邊司)*)는 조선 시대에 국방 및 군사 문제를 담당하던 최고 행정 기구이다.
1. 비변사의 성립
- 1510년 삼포왜란(왜구의 난)을 계기로 임시 기구로 설치됨.
- 1555년 을묘왜변(전라도 해안 지역에 왜구 침입) 이후 기능이 강화됨.
- 1592년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국가의 군사·정치·행정을 총괄하는 최고 의결 기구로 확대됨.
2. 기능과 역할
- 군사 문제뿐만 아니라 외교, 행정, 재정 등 국가 정책 전반을 다룸.
- 왕과 대신들이 모여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는 역할 수행.
- 주요 구성원: 영의정, 좌의정, 우의정, 육조 판서, 공조 참판, 각 군영의 대장 등이 포함됨.
3. 폐지
- 흥선대원군 집권(1863~1873) 이후 왕권 강화를 위해 비변사의 권한을 축소.
- 1865년 경복궁 중건 이후 기능이 더욱 약화됨.
- 1894년 갑오개혁 때 공식적으로 폐지됨.
※비변사는 초기에는 국방 기구였지만, 점차 조선 후기에 정치·행정 전반을 장악하면서 왕권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.※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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